요츠바랑 15권 [평범이라는 기적] 후기 봤다



중, 고등학생 시절 여러 가지 만화책과 노벨을 구매했었지만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며 거추장스러워진 짐들을 정리하며 대부분의 책들도 정리 헀다. 하지만 요츠바랑만 은 아직도 소장 중이며 신간도 꾸준히 구매 중이다. 그만큼 요츠바랑은 나에게 소중한 만화다.

요츠바랑의 매력은 과하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 담백하다. 마치 실제로 요츠바와 그 외 인물들이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다. 보통 순수 100%의 일상 물은 보통의 경우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일상이라는 게 우리가 격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물이라고 부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은 작위적인 개그를 섞어 재미를 더하거나 판타지적인 요소를 넣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요츠바랑도 연재 초기, 1~4권까지는 개그가 섞여있는 느낌이지만 그 후부턴 개그가 많이 줄어든다. 작가가 노리고 '이 부분은 웃기는 부분!'으로 설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재밌다니 이건 작가가 만화에 약을 탄것이 분명하다.

요츠바랑의 다른 일상 물과의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가 없다. 보통의 일상물에는 로리 캐릭터가 등장한다. 반 이상의 일상물은 로리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리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해당 캐릭터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은 안 쓰는 단어로 '모에'가 빠지지 않는다. (나쁘다는게 아니다. 요츠바랑의 특별한 점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츠바랑은 다르다. 여성의 어린아이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지만 로리 캐릭터는 아니다. 그 차이점은 여성 캐릭터를 남성으로 바꿨을때 인기가 변할지 말지를 생각해 보면 대충 느낌이 온다.(만약 요츠바랑을 로리물이라고 부른다면 난 정말 화가 날 것 같다.)

요츠바랑의 특별한 점은 작화에도 있다. 인물의 작화와 데포르메가 일상물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도 있지만 역시 대단한 점은 도구와 배경묘사에 있다. 작가의 전작 아즈망가대왕도 4컷만화치곤 중간중간에 나오는 도구들의 묘사가 좋았다곤 하지만 요츠바랑에서는 그 퀄리티가 압도적이다. 너무 대단해서 이에대한 작가의 변태적인 집착까지 보인다. 이러한 소묘에 가까운 정밀묘사는 작품에 몰입을 돕는다. 위에 말했던것 처럼 인물들이 지구 어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말이다. 소도구들은 특히 실제 존재하는 메이커와 모델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만약 일본에 산다면 이 점 때문에 몰입에 더욱 도움을 줄 것 같다.


(자전거 묘사가 정말 사실적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묘사때문에 연재 속도가 빠르지 않은 편인데 잡지 연재분에서 그리지 않은 배경과 도구들을 단행본에선 전부 다시 그리기 때문에 연재 속도가 배로 든다. 위에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배경은 물론 캐릭터까지 다시 그렸다. 이것이 18년간 15권을 출간하는 속도의 비결이다. 헌터헌터가 1998년부터 현재까지 36권이 나와 1년에 약 1.6권이 나오는데 요츠바랑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15권으로 1년에 약 0.8권 정도의 연재 속도를 보이고 있다. 퀄리티 적인 측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그 악명높은 토가시보다 단행본 발행 속도가 느리다... (그러는 와중 2009년 즈음 전작 아즈망가대왕을 전체 다 다시그려 신장판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7~9권의 작화를 더 좋아한다. 연재를 18년 가까이 하게 되면서 그림체가 많이 바뀌었고 성장했지만 요즘의 요츠바는 너무 동글동글 해졌다고 생각한다. 요츠바는 일본나이 5살, 한국나이로 6~7살인데 1~2권에서는 어린 아이 치고는 조금 더 나이 들어보이는 작화였다면 7~9권에서의 요츠바는 딱 제나이때에 맞게 보인다. 현재 작화가 더 동글동글 해 졌다고 해서 더 어려보이는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간 요츠바가 굴러다닐 정도로 동글동글 해질까봐 걱정이다. (주변 캐릭터도 전부 조금씩 미형으로 바뀌었다. 점보는 살이 빠졌는지 광대 밑이 들어간게 보인다. 이들 역시 예전 작화가 난 더 좋다.)

그리고 그림체와 더불어 요츠바의 성격도 많이 변했다. 10권 전까진 훨씬 장난꾸러기 같은 활동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조금 차분해진 느낌이다. 요츠바랑 1화에서 요츠바는 현재 사는 동내로 이사 오는날, 이사중 어느샌가 없어져서 옆집의 후카가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코이와이는 요츠바를 '이상한 녀석을 발견하면 십중팔구 걔' 라고 설명 해주고 후카는 전봇대에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곳에 매달려서 '맴- 맴-' 소리를 내며 매미 흉내를 내고 있는 요츠바를 발견한다. 이렇듯 요츠바의 처음 이미지는 평범하지 않으며 몸이 먼저 나서는 개구쟁이의 이미지다. (초반에는 언어 구사력도 떨어져서 심하게 말하면 정신적으로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그런 요츠바였지만 지금의 요츠바가 전봇대에 매달려 매미 흉내를 내는 장면은 쉽게 상상이 안간다. 요츠바의 정신적 성숙이라고 생각 할수도 있지만 작중 시간이 1년도 채 안 흐른점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이렇듯 캐릭터의 작화는 더 어려지는데 행동은 성숙해지는 점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아직 요츠바는 골목을 누비며 약간의 민폐를 끼치지만 미워할수 없는 아이이길 바란다.

13권부터의 계절적 배경은 가을이다. 계절적 배경 때문인지 작풍의 변화인지 원인은 모르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을 준다. 캐릭터들은 행복하고 여타와 다른 없는 일상이지만 왜 그런진 모르겠다. 나만 느꼈을지도. 마치 곧 완결이 날거같은 불안감도 있다. 만화가 불안한게 아니라 내가 불안하다.

15권의 마지막에 요츠바의 책가방 란도셀을 사러 가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란도셀 매장에서 란도셀을 맨 요츠바를 보고 눈을 적시는 코이와이가 나온다. 그 장면을 보고 나도 뭉클함을 느껴 살짝 감동했다. 15권 띠지에 써있는 문장처럼 정말 평범한 장면이지만 정말 기적같은 장면이다. 이렇게 코이와이가 요츠바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장면은 이 전에도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요츠바가 집안에서 페인트로 장난을 쳐서 온 집안에 페인트 범벅이 되었을때, 코이와이는 페인트 클리너로 청소를 하다가 페인트로 찍힌 요츠바의 발자국 하나는 기념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얼마나 소소하며 아름다운 장면인가. 코이와이의, 작가의 돌이킬수 없는 시간을 존중하며 추억하기 위한 생각이 그대로 들어나는 장면이다.
(세든 집에 발자국을 남기다.)


또 하나 좋아하는 장면은 요츠바가 집안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그릇을 부쉈을때의 에피소드다. 이때 코이와이는 요츠바를 무작정 혼내지 않고 차근차근 상황을 물어본다. 하지만 요츠바는 혼나기가 무서워 본인이 한짓이 아니라 창밖의 마술사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 하고 조금 더 캐묻자 자기 몸속에 거짓말쟁이 벌레가 들어와서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코이와이는 요츠바를 대리고 가까운 절로 향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요츠바는 코이와이에게 말을 걸지만 코이와이는 대답해 주지 않다가 거짓말쟁이 벌레를 잡으러 간다고 말한다. 해질녘에 두사람이 손을 잡고 걷는 장면에서 연출은 요츠바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절에 도착해서 요츠바는 절 입구 양쪽에 서있는 무서운 인왕상과 마주한다. 코이와이가 요츠바를 인왕상 앞에 내려놓자 거짓말쟁이 벌레대신 자신이 잡아먹힐것을 무서워한 요츠바가 엉엉 울며 사과한다. 우는 요츠바를 안아들고 코이와이와 요츠바는 귀가 하는데 귀가 하며 코이와이는 요츠바에게 "밥그릇 깬건 별일 아냐. 창문 유리 깬 것도, 커피 쏟은 것도 별일 아냐. 실수하는 건 요츠바의 일이니까.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마." 라며 말한다. 세상에. '실수=잘못'이 아니라니. 정말 놀랐다. 우리는 실수에 너무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요츠바 뿐만 아니라 누구든 처음 해보는 일엔 시행착오와 실수,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잘하면 넘어졌을때 일어나는 법을 모른다. 코이와이도 요츠바가 넘어졌을때 스스로 일어날때까지 기다려준다. 


(요츠바의 불안감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나도 이건 무섭다.)


코이와이의 이러한 교육상은 작중 곧곧에서 볼 수 있다. 15권에서는 요츠바가 인형을 던지며 놀다 선반위에 필기구와 잡동사니를 맞춰 어지르자 눈치보며 사과하는 요츠바에게 "왜 혼나는거야? 뭔가 나쁜 짓 했어?" 라며 되묻는다. 애초에 문제인식을 하지 않는다. 어지르는게 요츠바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곤 집 청소를 하고 코타츠를 꺼내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가상의 캐릭터지만 존경하게 된다. 너무 멋있다. 어른이다.

이렇게 요츠바랑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현실이 시궁창이라도 '나도 이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나도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하고 싶다'라는 내일을 향한 힘을 준다. 그렇기에 요츠바랑은 내게 특별하다.

작가에게 오랜 연재와 조금은 더 빠른 연재 속도를 바란다.

본격 아이 낳기 싫은 만화가 아따아따라면, 
본격 아이 낳기 싶은 만화는 요츠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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